선교현장 – 원주민 선교를 다녀와서

선교현장 – 원주민 선교를 다녀와서

– POSTED ON 09/15POSTED IN: 크리스천라이프

 

우리는 퀸스랜드의 브리즈번에서 한인목회를 하는 목사들이다. 호주에서의 우리의 목회 사역들 속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거룩한 선교적 소명에 대한 부담감을 항상 가지고 있던 차에 시드니의 정기옥 목사(안디옥장로교회)로부터 호주 원주민을 위한 선교에 대한 안내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한 거룩한 부담으로 퀸스랜드 원주민 선교회(KMIA) 지부를 만들게 되었다. KMIA(Korean Mission For Indigenous Australian)는 2011년 호주 원주민 선교에 뜻을 같이한 시드니 거주 한인 목회자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시드니 한인교회들과 성도들에게 원주민 선교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알리고 원주민 선교의 중복 투자를 막고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고 사역으로는 1. 정기 세미나 2. 선교인식여행 3. 원주민 종족입양. 4. 웹사이트를 통한 원주민 선교에 관한 정보공유 등으로 하고 있다.

 

선교여행을 떠나는 이유

선교인식여행이란 정기옥 목사의 설명에 의하면 “원주민 선교를 이루어 가는데 사명확인과 현장에 관한 이해를 하므로 효과적, 장기적 선교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오랜 선교사의 경험을 통하여 정기옥 목사의 선교에 대한 이해는 정확한 것임을 알고 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선교의 여정들

원주민 선교회 퀸스랜드 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박권용 목사(로고스 선교교회)를 필두로 강동명 목사(안개꽃 행복한장로교회), 필자인 정원일 목사(아가페 한인장로교회), 장원순 목사(사우스포트 한인교회), 박상운 목사(골드코스트 제자교회) 이상 다섯 분이 4박 5일 일정으로 모리(Moree), 보가빌라(Bogabilla), 브레와리나(Brewarina)의 원주민 마을을 중심으로 선교인식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첫째 날(6월 27일) 출발과 만남의 시간

아침 8시 50분 우리 일행은 브리즈번 왕성교회에서 네 분의 목사님을 만났다. 두 분은 골드코스트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이고 나를 포함한 셋은 브리즈번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한 분이 더 계셨는데떠나기 전 갑자기 허리를 다쳐서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 다섯은 이렇게 브리즈번을 출발해서 입스위치를 지나 투움바로 향했고, 두어 시간쯤 달려 투움바에 도착해서 주유소에서 잠시 쉬며 커피를 한 잔하고 보가빌리지라는 곳을 행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하늘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비를 보니 소싯적의 추억들이 아련히 스쳐간다. 고교시절 비속을 걸으며 나름 인생의 깊음을 생각하기도 하고 지금의 아내와 한국의 경춘가도를 달리며 연애를 하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 간다. 그렇게 추억들을 가슴에 새기며 보가빌라라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는 보가빌라이다. 이곳은 원주민 50%가 사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 백인과 피가 섞인 원주민들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장에서 원주민들을 만나거나 대화 할 수는 없었다. 가끔 길을 가는 학생들이나 쇼핑센터에서 혼혈원주민을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이곳 보가빌라에서 시드니에서 오시는 목사님들을 만나러 130km정도 떨어진 모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호주 동쪽의 유일한 온천지역이라고 한다. 이곳의 카라반 팍에 숙소를 정했고 시드니에서 오시는 목사님들과 합류하기로 한 곳이다.

시드니에서 오신 일행은 이영식 선교사(Taree지역 원주민 선교사), 윤석산 목사(늘푸른교회), 김제복 강도사(Uniting Chruch), 그리고 스티븐이라는 서양 선교사와 정기옥 목사(안디옥장로교회)이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모두 아홉 명이 되었고 이곳 모리의 숙박시설에서 나흘을 머물기로 했다.

우리는 도착 후 함께 기도를 했고 통성명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선교의 시작이다. 선교는 혼자서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루기에는 힘에 버거운 것이다. 그 첫 출발이 기도로 시작 되었고 거룩한 성도들의 애찬으로 표현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생명 드려 당신을 사랑하였기에 나 또한 당신을 주님 섬기듯 당신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당신의 귀중한 동역자이고 당신에게 사랑 받을 대상임을 잊지 말아주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의 공식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Stephen선교사 우리는 이곳에서 AIM 소속 스티븐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뉴캐슬 출생으로 6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원주민들과 함께 성장하며 그 과정에 또래 원주민 친구들과 함께 마약 등을 하며 방황하는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의 아내도 그때 함께 방황하던 친구였고 그러던 그는 어느 목사님을 만나 침례교 교인이 되며 인생의 전환을 가지게 되었고 36세에 영국으로 가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지내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런던 바이블 칼리지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목회사역을 섬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AMI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고 이에 순종하여 이곳 모리에서 12년째 원주민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안정된 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원주민들을 섬기는 것인가? 이에 대한 질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보면서 선교사는 자신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임을 본다. 때로는 고난이 다가오고 시련이 닥친다고 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하여 자신의 삶 전체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는 것 이것이 선교사의 길일 것이다. 오늘 스티븐을 보면서 호주 원주민 선교의 희망을 보게 된다.

 

둘째 날(6월 28일) 하나님의 선택 받은 사람들(폴과 에린의 삶과 사역들)

우리는 모리에서 원주민 사역을 하는 폴과 에린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폴은 이곳 모리에서 출생했고 성장하였다. 그의 부모는 백인으로 영국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한다. 모리의 공립학교 특수아동을 위한 교사였고 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이 원주민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아내인 에린은 뉴질랜드 사람이고 그는 선교선인 둘로스호에서 출생을 했으며, 모리의 학교에 선생으로 왔다가 지금의 남편 폴을 만나서 결혼을 했다.

이 둘의 사역은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그 둘은 원주민 선교를 위해 결혼했고,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원주민 선교를 위해 자녀들을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그들이 섬기는 원주민 마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신의 자녀들을 돌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들은 사역을 위하여 안정된 직장도 마다하고 사역에 적합한 직업을 찾아서 자비량 선교를 하고 있다. 우리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직장을 잃은 상황에 있었다. 사역에 우선을 두다 보니 직장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원주민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과 주일 예배에 모이는 70명의 원주민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소외된 원주민 자녀들을 머물게 하고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특별히 외부로부터의 후원이 없음에도 자비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또한 넓은 사역지를 이동하기 위해서 자신의 봉고차에 네 명의 자녀를 위해 조그마한 4층짜리 침대를 만들어서 재우고 자신들은 그 옆에 나무 박스를 붙여서 침실처럼 사용한다.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자신의 젊음을 사역을 위해 불태우는 폴의 가정을 보며 또 다른 하나님의 선택 받은 선교사로서의 인생을 목격하게 되었다.

 

셋째 날(6월 29일) 아이작 고든의 눈물

모리에서 347km 떨어진 곳에 브리와리나라는 지역이 있다. 이곳에 53세된 아이작 고든이라는 원주민 선교사가 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순수 원주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깊음이 묻어난다. 그의 사역을 들으면서 그의 어둡고 무거운 그리고 삶이 힘겨워 보이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는 53세의 나이로 평생을 원주민들과 함께 살았다. 부모님은 동부 해안 쪽에 살았는데 백인들의 이주 정책에 의해 이곳 브라와리나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평균 수명이 47세라고 한다. 몇 달 사이에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수십 명의 장례를 치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평생을 함께 백인 사회로부터 소외당하며 살아온 친구이고 이웃들이다. 그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곁을 떠나고 그들을 장례 하면서 자신도 머지않아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신도 여러 가지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삶은 더욱 슬퍼 보이기도 한다. 평생을 자신과 같은 원주민 형제들을 섬기며 박해와 차별, 소수자의 아픔 속에서 오랜 세월 그들을 섬겨왔지만 자신의 원함만큼 변하지 않는 그들과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은 정부와 백인사회의 냉대에 관하여 모든 아픔을 한 몸으로 다 받아내는 삶을 살아온 아이작 고든, 전혀 지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에도 서서히 어둠의 그늘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원주민선교라는 부분으로 접근하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곧 삶이고 신앙이고 가족이며 이웃의 관계이다. 선교의 관점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자신의 사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역의 고뇌와 아픔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해 본다. 그러나 이곳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평생을 받쳐서 자신의 종족을 섬겨온 이유는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와 동일할 것이다. 그것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며,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열망으로 우리의 가슴속 깊이 묻어져 있는 신국을 향한 소망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이 그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원동력이 되어짐을 나는 믿는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원주민선교라는 대 명제 앞에 서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아이키(아이작 고든의 애칭)를 가슴에 묻고 무거운 가슴을 안고 발길을 돌린다.

 

넷째 날(6월 30일) 폴의 가족들 그리고 인생의 여정

벌써 넷째 날이 되었다. 우리는 스티븐의 안내로 폴의 부모인 레오 스트라한의 부부와 폴이 함께 섬기는 사역을 방문했다. 그들은 모리에 있는 원주민들에게 매주 야채와 빵을 제공해 주고 있다. 지역에 있는 콜스와 울워스에서 매주 빵과 야채를 기부 받아서 원주민들에게 주 2회 제공해 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화요일은 야채와 과일을, 목요일은 빵과 스파게티와 같은 것을 제공한다.

이들 부부가 원주민을 섬기기 시작한 것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오부부는 이곳의 공립학교 특수교사로 처음 오게 되었고 학교에 제직 중 원주민 장애아를 자신의 집에서 9년을 길렀다고 한다. 매일 학교에 갈 때 다리가 불편한 그를 휠체어에 태우고 내리며 아이를 돌보았고, 거기에 자신의 자녀들도 함께 양육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한번도 이런 삶을 거부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가 지금 모리에서 그의 부모와 함께 사역하는 폴이다. 오늘 그들이 저녁식사로 빵과 스파게티를 나누어 주는 날이다. 잠시 방문한 곳이지만 팔을 걷어 부치고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되어보고자 함께 작업을 나눈다. 칼로 빵을 썰고 봉지에 담아 박스에 넣는다. 그리고 스파게티를 삶고 소스를 끓여서 스치로플 도시락에 담아 박스에 따로 담는다. 이렇게 작업을 이어가다가 나의 손가락을 빵 써는 칼에 조금 베었다. 그 아픔이 온몸을 저며온다. 그래도 혹시나 이로 인해서 팀원들과 레오부부가 걱정할까 봐 입을 다문 채 아무일 없는 듯 일을 마쳤다. 그리고 나와 박권용목사님, 시드니에서 오신 김제복 강도사님과 레오가 한 차를 타고 다른 일행은 폴의 봉고차를 타고 원주민 마을을 순회했다. “헬로! 유 니드 디너?”라고 묻고 “예스”라고 대답하면 식사를 나누어 준다. “왜 그들에게 저녁을 원하느냐고 묻냐?”고 질문을 했다. 그들은 주는 자의 높은 위치에서 가난한 이들을 동정하거나 천하게 보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은 주님의 마음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먼저 물어보고 동의하면 나누어 준다고 한다. 그들이 레오부부의 마음을 아는지 그들은 매우 친숙해 보였고 정감 있어 보였다. 실제로 그들 부부는 이곳에서 인정받는 마음씨 좋은 이웃이었다. 넷째 날의 여행은 이렇게 나의 뇌리를 주님의 십자가를 이루어가는 동역자의 모습을 각인시키면서 보낸다.

 

다섯째 날 (7월 1일) 선교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선교인식 여행을 마감하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모리에서의 마지막 주어진 기회를 만끽하기 위하여 우리 일행들은 서둘러 짐을 쌌고 시드니 팀과 함께 아침을 먹고 그들을 훈훈한 사랑의 마음으로 배웅을 했다. 그리고 남은 우리들은 드디어 마지막 주어진 기회, 온천을 최대한 즐긴다. 이것이 오늘의 지상 사명이 되었다. 다같이 수영복만 입고 온천으로 직행했다. 한주간의 피로가 썰물 빠지듯이 물러나는 것 같다. 아! 좋다. 모든 부담감을 떨쳐 버리고 잠시 사색에 잠긴다.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의 삶은 무엇을 향해서 달려 왔는가? 삶의 깊이와 넓이는 어떠한가? 주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사랑하는 아들아 수고했다고 말할까 아니면 책망을 하실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제 모든 것을 떨치고 집으로 갈 때이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나의 뇌리를 지나가는 사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러한 감동의 여운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이만 글을 놓을까 한다.

모두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합니다.

 

 

 

 

 

 

 

 

 

 

어느 날 밤 조그마한 구석 방에서

정원일 목사(브리즈번 아가페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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